다들 잘 지내시죠? 저는 잘 지냅니다.
여기 날씨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어요. 어제는 처음으로 바람이 시원하다라는 느낌을 가졌어요. 바람은 찬 게 아니라 시원한 거에요. 하하하 버티고 버티니 이렇게 좋은 날도 오는구나.
2주 있으면 학원 과정 모두 끝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벌써 23주나 흘러갔어요. 반년이 이렇게 가는군요. 와서 뭘 했나 떠올려보다가 이렇게 끄적이고 있어요.
1.
여기 와서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건 바닥에 가까운 영어능력과 살인적인 물가였어요. 의사소통도 의사소통이지만 수업을 따라가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한 달 정도는 정말 긴장하고 살았지요. 지금은 뭐 그냥 내 동네에 사는구나 하고 살아요. 돌아다녀도 별 새로울 게 없고요.
근데 여기 물가가 비싸긴 엄청나게 비싸요. 뭘 사든 한국의 두 배 가격은 되는 것 같아요. 택시비 같은 경우는 한국의 세 배 이상인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가면 택시비 싸다고 막 타고 돌아다닐 듯해요.
4월까지 공부할 계획으로 예산을 잡고 빠듯하게 생활하다가 이게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12월까지 과정 마치고 돌아가기로 하고는 그냥 쓰고 살고 있어요. 후훗~~
사실 이게 자업자득인 게 빌려준 돈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예산을 잡고 움직였거든요. 그럼 안되는 거였는데 말입니다.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 공산주의자에게 돈을 빌려줘보고 알았어요. 공산주의의 조건이라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데 있을텐데 사람이란 게 그냥 냅두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갖고 싶은 건 가지려 하는 무책임한 유아적 존재에 머무는 거 아니겠습니까. 연락하던 과정을 생각하니 짜증나서 더이상 서술할 수가 없네요.
2.
뉴질랜드에서 할만한 거라면 역시 산과 바다를 돌아다니는 거에요. 정말 다양하고도 아름답답니다. 이동하노라면 경치가 계속 바뀌어서 심심하지가 않아요. "여기"에 사진들 있어요.
3.
전 식탐이 없는 대신 음식을 가리는 경우도 없어서 외국 생활에서 음식이 주는 스트레스는 없는 편인데 회와 소주는 가끔 생각났어요. 그래서 어제는 시도해봤어요. 비교적 신선한 생선을 파는 마트에서 이동네 생선을 사와서 직접 잘라봤어요. 좀 비리긴 한데 레몬즙을 뿌렸더니 괜찮더라고요. 소주 대신 화이트와인을 엄청나게 흡입했어요. 오랜만에 필름이 끊어졌어요.
4.
어쨌든 한국에 가면 참치회와 굽네치킨을 엄청나게 먹을 거에요. 참치와 닭을 멸종 위기종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몰라요.
5.
여기 와서 한국 영화를 딱 한 편 봤어요. 북촌방향이요. 홍상수 영화는 찌질한 남자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요. 그런데 그것도 반복되면 식상하잖아요. 무엇보다 최근에는 제가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보더란 말이죠. '쟤들보다야 내가 낫지.' 이런 생각으로 보니 어떻게 이입을 하며 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북촌방향은 뒤통수를 치더군요. '진짜 넌 아냐?' 이렇게요. 그래서 영화 끝나고 혼자 키득댔어요. 이것보다 나아간 뭔가를 홍상수가 만들 수 있을까나요? 더 갈 곳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영화는 하다하다 여기까지 끄집어내는구나 했거든요.
6.
홍상수 영화 하니 영화 해변의 여인이 떠올라요. 거기서 김승우가 한국 남성이 서구 남성에게 가지는 성적 열등감을 표출하죠. 그러고보니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서양 남성은 동양 여성을 좋아하지만 서양 여성은 동양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보면 정말 그걸 믿고 있는 애들이 많은데요 지켜본 결과 기본 공식은 이래요. '남자는 여자 가리지 않지만 여자는 남자 가린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여자는 남자를 꼬실 수 있지만 남자가 여자를 꼬시기는 좀 어렵답니다.
그러니 괜한 열등감 갖지 말고 재미있게 놀면서 공부나 열심히.
7.
외국 애들은 이상한 걸 비교적 덜 믿는 편이지만 그래도 UFO 같은 주제가 나오면 티격태격하곤 해요. 얼마 전엔 피라미드를 어떻게 만들 수 있었겠느냐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어요. 선생부터 학생까지 돌아가면서 외계인의 참여부터 사라진 고대 기술문명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제 차례가 왔기에 짧게 답변했어요.
"Work very hard."
그레이엄 헨콕이 이딴 걸로 사기친 게 언제적이더라?
8.
한국 갔다가 다시 잠시 다녀오고 싶은 동네에 있는 성당이에요. 저런 데 가보고 싶었어요.
9.
하여간 저는 잘 있어요. 한참 전 사진이라 지금보다 머리가 짧군요. 다시 깎을 때가 되었어요.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집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 | 2012.01.02 |
---|---|
시험을 망쳤을 때, 나라별 반응 (1) | 2011.12.16 |
비폭력 대화 정리내용 (0) | 2011.11.15 |
비폭력대화(3) - 연습문제(7장~끝) (2) | 2011.11.14 |
똑같이 말리고 싶지 않은 김밥같은 휴일 (3) | 2011.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