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시즘 이야기를 하며 디워가 언급되었죠.
당시, 어느 커뮤니티에서든 디워를 비판하거나 디워를 비판한 평론가를 옹호하면 까이는 분위기였어요. (생각나서 뒤져보니 온라인 어딘가에서 까이던 제 흔적도 있군요.)
이송희일 감독의 글을 찾아보니 본인 블로그에서는 지워졌더라고요. 하긴 욕설 댓글 때문에라도 내려버렸겠죠.
1. 막 개봉한 <디 워>를 둘러싼 요란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최종적으로 느낀 것은 막가파식으로 심형래를 옹호하는
분들에게 <디 워>는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는 점이다.
'헐리우드적 CG의 발전', '미국 대규모 개봉' 등 영화 개봉 전부터 <디 워>를 옹호하는 근거의 핵심축으로 등장한
이런 담론들과 박정희 시대에 수출 역군에 관한 자화자찬식 뉴스릴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기는 여전히 70년대식 막가파 산업화 시대이고, 우리의 일부 착한 시민들은 종종 미국이란 나라를 발전 모델로 삼은 신민식지 반쪽 나라의 훌륭한 경제적 동물처럼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엉망인데 현란한 CG면 족하다고 우리의 게임 시대 아이들은 영화와 게임을 혼동하며 애국심을 불태운다. 더 이상 '영화'는 없다. 이 영화가 참 거시기하다는 평론가들 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악다구니를 쓰는 애국애족의 벌거숭이 꼬마들을 지켜보는 건 정말 한 여름의 공포다.
2. 그 놈의 열정 좀 그만 이야기 해라. <디 워>의 제작비 700억이면 맘만 먹으면, 난 적어도 350개, 혹은 컬리티를 높여 100개의 영화로 매번 그 열정을 말할 수 있겠다. 제발, 셧업 플리스. 밥도 못 먹으면서 열정 하나만으로 영화 찍는 사람들 수두룩하다. 700억은 커녕 돈 한 푼 없이 열정의 쓰나미로다 찍는 허다한 독립영화들도 참 많다는 소리다. 신용불량자로 추적 명단에 오르면서 카드빚 내고 집 팔아서 영화 찍는, 아주 미친 열쩡의 본보기에 관한 예를 늘어놓을 것 같으면 천일야화를 만들겠다. 언제부터 당신들이 그런 열정들을 챙겼다고... 참나.
심형래씨는 700억 영화짜리 말미에 감동의 다큐와 감동의 아리랑을 삽입하고, TV 프로그램마다 나와서 자신의 열정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고지깔 안 보태고 영화판에 몇 만 명은 족히 존재할 게다.
지구가 존재한 이래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아서 영화를 찍어놓고, 누가 누구를 천대했다는 건지, 참나.
3. 충무로가 심형래를 무시한다고? 정작 심형래를 '바보'로 영구화하고 있는 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충무로라는 영화판은 대중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에게 애증의 욕망 대상이다. 스타들을 좋아하지만, 반면 끊임없이 스타들을 증오하는 두 가지 배반된 욕망의 투영물인 셈. 이는 스펙타클화되어 있는 정당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갖는 이중의 배리되는 시선과 닮아 있다.
예 를 들어 기존 정당 정치에서 배제된 듯 보이는 '바보' 노무현은 잘 살고 거짓말을 일삼는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유일한 대항점으로 시민들에게 비춰지면서 대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심형래는 이와 다르지 않다. 충무로에서 지속해서 배척된다고 가정된 바보 심형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심형래의 아우라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저 기존 충무로에 대한 환멸이 투영되어 있으며, 바보는 여전히 바보로서 시민들에게 충무로에 대한 환멸의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보 전략'은 바보 아닌 것들을 비난하며, 서로를 바보, 바보 애정스럽게 부르다가 끝내는 정말 바보가 되어 선거함에 투표 용지를 몰아 넣거나 친절하게 호주머니를 털어 영화 티켓값으로 교환해주는 바보 놀이, 즉 아주 수완 좋은 훌륭한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4. 심형래와 기타노 다케시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코메디언 출신이면서 B급 영화들을 만들어낸 두 사람의 차이 말이다. 열정의 차이? CG의 기술력의 차이? 애국심의 차이? 헐리우드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의 차이? 딱 하나 있다. 영화를 영화적 시간과 공간 내에서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다.
CG가 중요한 것도, 와이어 액션이 중요한 것도, 단검술과 권격술의 합의 내공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스스로조차 정리가 안 되어 있다면, 그 아무리 입술에 때깔 좋고 비싼 300억짜리 루즈를 발랐다고 해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5. 좀 적당히들 했으면 좋겠다. 영화는 영화이지 애국심의 프로파겐다가 아니다. 하긴 도처에 난립하고 있는 온갖 징후들로 추측해 보면, 이 하수상한 민족주의 프로파겐다의 계절은 꽤나 유의미한 악몽의 한 철로 역사의 페이지에 기록될 게 분명하다. 아, 덥다 더워.
여기는 여전히 70년대식 막가파 산업화 시대이고, 우리의 일부 착한 시민들은 종종 미국이란 나라를 발전 모델로 삼은 신민식지 반쪽 나라의 훌륭한 경제적 동물처럼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엉망인데 현란한 CG면 족하다고 우리의 게임 시대 아이들은 영화와 게임을 혼동하며 애국심을 불태운다. 더 이상 '영화'는 없다. 이 영화가 참 거시기하다는 평론가들 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악다구니를 쓰는 애국애족의 벌거숭이 꼬마들을 지켜보는 건 정말 한 여름의 공포다.
2. 그 놈의 열정 좀 그만 이야기 해라. <디 워>의 제작비 700억이면 맘만 먹으면, 난 적어도 350개, 혹은 컬리티를 높여 100개의 영화로 매번 그 열정을 말할 수 있겠다. 제발, 셧업 플리스. 밥도 못 먹으면서 열정 하나만으로 영화 찍는 사람들 수두룩하다. 700억은 커녕 돈 한 푼 없이 열정의 쓰나미로다 찍는 허다한 독립영화들도 참 많다는 소리다. 신용불량자로 추적 명단에 오르면서 카드빚 내고 집 팔아서 영화 찍는, 아주 미친 열쩡의 본보기에 관한 예를 늘어놓을 것 같으면 천일야화를 만들겠다. 언제부터 당신들이 그런 열정들을 챙겼다고... 참나.
심형래씨는 700억 영화짜리 말미에 감동의 다큐와 감동의 아리랑을 삽입하고, TV 프로그램마다 나와서 자신의 열정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고지깔 안 보태고 영화판에 몇 만 명은 족히 존재할 게다.
지구가 존재한 이래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아서 영화를 찍어놓고, 누가 누구를 천대했다는 건지, 참나.
3. 충무로가 심형래를 무시한다고? 정작 심형래를 '바보'로 영구화하고 있는 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충무로라는 영화판은 대중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에게 애증의 욕망 대상이다. 스타들을 좋아하지만, 반면 끊임없이 스타들을 증오하는 두 가지 배반된 욕망의 투영물인 셈. 이는 스펙타클화되어 있는 정당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갖는 이중의 배리되는 시선과 닮아 있다.
예 를 들어 기존 정당 정치에서 배제된 듯 보이는 '바보' 노무현은 잘 살고 거짓말을 일삼는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유일한 대항점으로 시민들에게 비춰지면서 대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심형래는 이와 다르지 않다. 충무로에서 지속해서 배척된다고 가정된 바보 심형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심형래의 아우라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저 기존 충무로에 대한 환멸이 투영되어 있으며, 바보는 여전히 바보로서 시민들에게 충무로에 대한 환멸의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보 전략'은 바보 아닌 것들을 비난하며, 서로를 바보, 바보 애정스럽게 부르다가 끝내는 정말 바보가 되어 선거함에 투표 용지를 몰아 넣거나 친절하게 호주머니를 털어 영화 티켓값으로 교환해주는 바보 놀이, 즉 아주 수완 좋은 훌륭한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4. 심형래와 기타노 다케시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코메디언 출신이면서 B급 영화들을 만들어낸 두 사람의 차이 말이다. 열정의 차이? CG의 기술력의 차이? 애국심의 차이? 헐리우드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의 차이? 딱 하나 있다. 영화를 영화적 시간과 공간 내에서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다.
CG가 중요한 것도, 와이어 액션이 중요한 것도, 단검술과 권격술의 합의 내공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스스로조차 정리가 안 되어 있다면, 그 아무리 입술에 때깔 좋고 비싼 300억짜리 루즈를 발랐다고 해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5. 좀 적당히들 했으면 좋겠다. 영화는 영화이지 애국심의 프로파겐다가 아니다. 하긴 도처에 난립하고 있는 온갖 징후들로 추측해 보면, 이 하수상한 민족주의 프로파겐다의 계절은 꽤나 유의미한 악몽의 한 철로 역사의 페이지에 기록될 게 분명하다. 아, 덥다 더워.
'예인'이란 분이 블로그에 정리한 내용을 링크합니다.
심형래에 대한 독사와 에피스테메
2. 언제나처럼 남,여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별 관련은 없습니다만 이런 우스개도 있다고요.
3. 강유원, 김어준 라디오 인터뷰도 잠시 인용했지요.
김 : 안녕하십니까.
강 : 예 안녕하십니까.
김 : 헤어스타일이 오늘은 좀 차분한 것이, 흐음...
강 : 예, 오늘 물묻은 상태에서 잠을 자서 그렇게 됐습니다.
김 :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헤어스타일이 있는데 오늘은 굉장히 차분하시고
강 : 원하시면 제가 다음에 그렇게 만들어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김 : 저희 강유원 박사님은 헤어스타일로 철학을 하시고
강 : 차력도 합니다. (웃음)
김 : 헤어스타일로 강 : 몸도 만들고 있습니다.
김 : 여러분은 누구를 떠올리시면 되냐면, 과거 배추머리 김병조씨 였던가요? 그 머리를 조금 더 뻥튀기하면 나오는 헤어스타일입니다.
강 : 고맙습니다.
김 : 배수의 진을 저희가 부활을 시켰는데, 저희가 박사님땜에 부활시켰습니다.
강 : 아 그래요? 저도 배수의 진을 치고 임해보겠습니다.
김 : 배수의 진 코너의, 저희 코너의 취지는 이런 겁니다. 아시겠지만 다시 한번 오랜만에 말씀드려 보자면, 우리가 먹고살기 바쁜데 이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고 살 수는 없잖습니까.
강 : 그렇죠. 그래서도 안되고.
김 : 그런데 어디 가가지고 무슨 주제가 나왔는데 그 주제에 대해서 한 두 마디 정도 안하면 기죽고 그래서 한 두 마디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전공자들처럼 원서를 다 공부할 수는 없잖습니까. 한두마디 착 치고 탁 빠지고(쿡쿡) 그럴 때 필요한 최소한의 덕목. 강 : 좋습니다.
김 : 삶의 태도가 얍삽하긴 하나,
강 : 얍삽한 거 아니에요. 얍삽한 거는 이십분 정도 되는 시간 투자해서 들어서 외우지도 않고 아는 체 하는 게 얍삽한거고, 이번 시간에 제가 알려드리는 것은 외우시면 됩니다. 암기사항을 쫙 준비해가지고 왔으니까.
김 : 이것은 문화적 삶의 처세를 가르치는...
강 : 처세라기보다는 이것도 배수의 진입니다만 그거 처세술 아냐 하고 누가 물어보면 삶의 태도지. (웃음) 또는 이게 옷 브랜드가 있거든요 모두스 비벤디라고 하는 브랜드 기억하시죠? 이게 라틴어인데 삶의 방식이라는 말이에요. (아...) 이게 나의 모두스 비벤디야 이러면 됩니다. (폭소) 외우시면 됩니다. 이거 외우시면 됩니다. 삶의 방식. 모두스가 방식이라는 말이고요 비벤디가 삶의 라는 말인데, 한가지 더 알려드리자면 라틴어는 불어와 마찬가지로 형용사가 뒤에 있습니다. (웃음) 삶의 방식. 모두스 비벤디야. 너무 굴리시면 안 되고요, 굴릴만한 발음이 없습니다.
김 : 나의 모두스 비벤디지 하면서 표정을 싹 굳히는 거죠.
강 : 약간 시선을 한시 방향으로 돌리면서 어금니를 한쪽으로 딱 앙다물고 얘기하면 됩니다. 발음이 딱 나오거든요. 모두스 비벤디 이렇게. (폭소)
김 : 철학을 전공하셨잖습니까. 지금처럼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알려주세요. 어금니 깨물고 한시 방향 모두스 비벤디 이렇게.
강 : 네.
김 : 이십분 내에 대단히 바쁘게 돌아가거든요.
강 : 예 저 그런거 대단히 좋아합니다.
김 : 철학 그래서 오늘 첫시간은 철학을 하기로 했습니다.
강 : 아, 철학...
김 : 최근에 그 외 자크 데리다라고 죽었잖아요.
강 : 아, 자크와 콩나무라는게 있죠. 전 그 사람 생각나요. 자크 데리다 하면 자크와 콩나무 생각나요. 자크 데리다 보면 별로 중요한 철학자 아닙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스펠링 몰라도 되고, 자크와 콩나무 읽었다는게 더 중요하지 자크 데리다를 읽는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철학계에서는요, 죽은지 50년 지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관습입니다. 철학의 역사가 2500년이나 되다보니까 아직 옛날 사람들, 1000년 전에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공부할게 많아요. 엊그저께 배운 사람들 다룰 시간 없어요. 그러니 요즘 사람들 신경쓰지 마시고, 그리고 1952년 이전에 죽은 사람에 대해선 저작권이 없거든요. 국제 저작권협회 규약에 따르면. 그 이후에 죽은 사람들 번역하면 돈만 들어요. 번역할 필요 없습니다. (웃음) 지금 예를 들어서 그... 칸트같은 사람 18세기, 1800년대 사람인데 이 사람들 아직 연구 안 끝났습니다. 그러니 1900년대, 2000년에 죽은 철학자를 우리가 돌볼 틈이 없어요. 제가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드리는데, 자크 데리다 해체주의다 해체다 이러면 해체공법 이런 거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폭소) 뭘 해체하는지 관심 안 가져도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얘기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나옵니다. 자크 데리다라든가 들뢰즈라던가 가타리 이런 애들 나오잖아요. 이런 등등이 주제가 되잖습니까, 그러면 그것에 대한 모두스 비벤디는, 철학은 너무 역사가 깊기 때문에 아직 20세기 21세기 사람을 다룰만큼 한가하지 않아,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이 이상은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폭소) 우리나라에 프랑스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잖아. 원전이 아직 다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는 시기상조지, 이렇게 (웃음)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최근에 유행하는 유명한 사람에 대한 모두스 비벤디 나왔습니다. 제가 전공이 해겔 철학인데 서양철학사에서 현대철학으로 봅니다. 데리다 이런 사람은 애기죠. 신생아들이죠. 신생아의 안마를 할 수가 없어요. 자크 데리다 하면 아 철학의 신생아, 애기들이네. 이렇게 하면서 완전히 번역된 원전도 없잖아. 우리가 지금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없고 시기상조야. 렉시콘이 안 나왔거든. 렉시콘이라는게, 스펠링 적으세요, 엘 이 엑스 아이 씨 오 엔.(받아적듯 따라함) 렉시콘이라는게 이제 철학자가 사용한 용어들을 정리한 사전입니다.
김 : 이야 이거 중요하네.
강 : 렉시콘입니다. 엘 이 엑스 아이 씨 오 엔. 케이 오 엔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라틴어에서 기원한 말인데 영어에서도 쓰이고 독일어에선 케이 오 엔. 철학하는 업계에서는 다 통하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은 다 쓰는 겁니다. 렉시콘이 아직 안 나왔잖아. 지금 몇가지 키워드를 알려드렸습니다. 렉시콘 없는 철학자는 의미가 없어,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이 됩니다.
김 : 마음이 훈훈해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저는 얼마전에 자크 데리다 기사가 나오는데 아니 나는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데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죽었다길래, 그런데 나는 모르겠고 해서 약간 안타까움도 들고 뒤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자크 데리다를 누가 말하면 기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강 : 아 그러세요? 일단 렉시콘까지는 얘기하신다음에 그건 그렇고 자크와 콩나무 읽어봤나? 이렇게. (폭소) 동화 안읽으면 기본이 안된거거든요 가정환경 안 좋았다는 증거가 되고 어렸을때 막 이렇게 형편이 안 좋아서 이상한 데 다녔다는 증거가 나오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철학을 논할 때가 아니에요. 동화책이 우리의 기본이지. 자크와 콩나무 읽어봤나 그걸로 가시면 상대는 완전히 제압되는거죠. 그리고 유유히 그럼 나 이만 동화나 읽으러 가겠네 하면서 떠나면, 간략하게 해결이 됩니다.
김 : 최근 수십년간 철학은 한꺼번에 해결이 되고 오래된 양반들,
강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런 것이 있는데 이 철학이 뭐냐 본격적인 철학 담론이 진행되는데 철학이 뭐야 이러면 플라톤이 말한 철학의 정의를 머리 속에 담고 계셔야 돼요. 철학이 무엇이냐 하는 것부터 연구하잖습니까. 철학이 무엇인가 하면, 플라톤 먼저 말씀드리면, 플라톤 스펠링이 피 엘 에이 티 오 엔 이에요. (으하하하) 그런데 영미권에서는 피 엘 에이 티 오라고 쓰거든요. 그래가지고 플레이토 라고 읽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리스토틀이라고 쓰기도 하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당황하면 안돼요, 피 엘 에이 티 오 엘 하고 피 엘 에이 티 오가 동일인물을 가리키는거에요. 형제를 가리키는게 아니에요.
김: 티 오 엔하고 티 오하고
강: 어 이게 제가 실제로 철학 개론 강의할 때 이 두 사람이 형제냐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형제가 아니라 번역본 따라서 달리 쓴다. 플라톤이 말한 철학의 정의가 뭐냐면, 적으십쇼, 대상을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취급하는 능력.(받아적듯 한 단어씩 따라함) 으음 이게 이제 철학의 정의에요. 여기서 핵심은 탁월한 능력에 있어요.(탁월한 능력, 이라고 따라함) 철학은, 철학과에서 배우는 과목 다 배웠다고 철학을 할 수 있는게 아니에요. 서양철학사를 외웠다 이랬다고 철학을 할 수 있는게 아니에요. 플라톤의 정의에 따르면 대상을 지적으로 탁월하게 취급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능력을 기르는데 철학의 핵심이 있습니다. 철학의 정의가 이거니까 우리가 대화를 하다가 헤겔이 어땠네 니체가 어땠네 데리다가 어땠네 하잖아요? 그때 이제 다소곳이 들어줍니다. 계속 들어주다가, 그때 한 마디 할 수 있는 거죠. 내가 알기로는 플라톤이 철학을, 대상을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취급하는 능력이라고 했는데, 그 사람들을 공부해서 당신은 어떤 능력을 길렀어? 이렇게 딱 물어보면 답이 막히게 되어있어요. 그럼 그것을 배워서 가령, 우리 눈앞에 보이는 핸드폰에 대해 탁월하게 취급해봐. (웃음) 능력 있나? 그럼 자네는 철학의 기본 정의도 안 되어있는 상태에서 지금 암기만 한거야. 마치 수능 시험공부하듯 한건데 그건 아니라고. 철학은 능력을 기르는데 있어. 대상을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취급하는 능력. 일단 거기서 출발하는 거에요. 그럼 상대가 무슨 얘기를 계속 하거든요. 그런 경우에 그런 사람들이 대게 그렇게 당하면, 더 어려운 단어 독일어 불어 섞어가며 막 얘기를 하거든요. 계속 듣습니다. 그러다가 탁 한마디 합니다. 외국어 능력 말고. (폭소) 딱 이렇게 가주면, 플라톤 인용하면 어떤 사람을 전공한 사람이건간에 한수 접히거든요. 화이트헤드라는 영국의 철학자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이런 말을 했거든요.
김 : 각주에, 해석에 불과하다?
강 : 예. 그러니까 거기다가 덧붙이면 되는거죠. 지금 플라톤부터 해야하지 않겠나. (폭소) 각주 아닌가, 나머지는.
김 : 각주라고 한 사람 누구라고요?
강 : 화이트헤드 흰머리 백두. 외우기 쉽습니다. 스펠링 다 아실거에요. 더블유 에이치 아이 티 이 헤이치 이 에이 디. 화이트헤드.
김 : 이 사람이,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강 : 네. 화이트헤드가 각주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렇게까지 딱 정리가 되고 서양철학사에 나오는 지식인 많이 외운다고 해서 플라톤이 말하는 능력이 길러지는 게 아니다. 나는 그런 점에서, 그렇게 해서 대상을 탁월하게 취급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니까, 많은 대상에 대해서 각자 각자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헤드폰 연구하고 마이크 연구하고 안경 연구하고 PDA 연구하고 시계 연구하고 그 다음에, 이 연구를 많이 한 다음에, 연구 많이 한 다음에 연구성과를 모아서 그것을 지적으로 정리하는게 철학 연구다, 저는 이렇게 보는거죠. 그럼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는거죠. 좋다. 그럼 나는 철학사 공부한게 잘못이라 치자. 그럼 당신은 뭘 하는거냐? 저는 이렇게 대답하죠. 철학사는 최후의 학문이기 때문에, 나는 아직 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게 올바로 보는 겁니다. 훌륭한 변명도 되고, 올바른 태도도 됩니다. 요즘에 대학에 철학과 학생들이 자기네 과에서 배우는 과목만 제대로 하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그거는 이제, 착각하는 겁니다. 능력을 기르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강 : 그러면 이제 두 번째, 그 능력을 어떻게 기르느냐. 철학을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되요. 우리가 흔히 인생철학 그러잖아요. 인생을 살면서,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를 대충 다니는 사람 있죠? 열심히 다녀야 해요. 채팅을 하고 있다, 열심히 해야 해요.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열심히 해야 해요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갈데까지 가보는 거 있죠. 철저하게 철학을 하는 기본입니다.
김 :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과 그것을 깨닫는 것이 철학적 사유의 기본이다?
강 : 그렇죠. 그런 다음에 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자기가 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날마다 기록을 하면 자기가 생각한 것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자료가 되거든요. 두 가지만 하면 돼요.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일 열심히 할 것 둘째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철저하게 기록할 것.
강 : 그래서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보면 대단치 않거든요. 우리가 보기에 어려운 말 쓰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철학자들이 제기하는 증명이라는게, 이게 중요한 겁니다, 귀 기울여 주세요, 철학자들은 철학책에 나오는 문제는 답이 없는 것이거든요. 의문을 갖기 시작해요.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평생 연구를 하다가 혼자 하니깐 짜증나니까, 책을 쓰는거에요. 니들도 한번 죽어봐라(대폭소), 책을 씁니다. 평생 고민했는데 안 풀렸어. 나 혼자 고민하기 억울해.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것까지 했단 말이지? 억울해. 니들도 한번 해봐, 이렇게 나온 책이거든요. 그래서 이천년전에, 플라톤 같으면 2500년 전에 나온 그 책을 아직도 읽는 거죠. 아직도 안 풀렸어요. 플라톤이 지금 웃고 있어요. 약오르지 하면서 웃고 있어요.
김 : 아주 오래된 건 플라톤으로 재끼고 최근의 것은 애잖아 하면서 재끼고, 이제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어떡할까요. 칸트도 등장하고.
강 : 제가 이제 핵심적으로 반드시 외워야 할 철학자 네 다섯명을 짚어드리겠습니다. 플라톤 외우셔야되고, 아리스토텔레스 외우셔야됩니다. 속된 말로 기본안주. 체계적으로 철학을 한 사람은 두 사람이고요, 중세시대 들어오면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있습니다. 니체가 어떻네 하이데거가 어떻네 그러면 딱 한 마디 하세요. 그 사람들 체계를 세운 사람은 아니잖아. 시스템은 아니잖아. 흔히 하는 말로 잔챙이라고 하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 헤겔, 다섯명입니다. 외우십시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 헤겔.
김 : 니체는 안 들어가나요?
강 : 아... 애기는 아닌데요, 중학생 쯤 됩니다. 그리고 니체는, 이건 제 개인적인 편견일지 모르지만, 니체 좋아하는 사람은 다 파시스트입니다.(폭소)
김 : 플라톤 소크라테스,
강 : 아 아니에요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 헤겔. 칸트를 예로 들어 말하여 보면 칸트는, 칸트 같은 경우는 엑기스주의자에요. 책 제목 보면 순수이성비판. 책 제목에 순수 썼습니다. 엑기스. 이 사람은 경험 세계를 돌보지 않아요. 순수한 사람이니까, 도덕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정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그냥 간단하게 너의 마음의 깨끗함을 믿고 살아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칸트하고 플라톤하고 딱 연결되는 사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온갖 잡다한 걸 다 연구하고 살아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 전체를 살펴보면 잡다함의 극치거든요. 그게 바로 헤겔하고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네 명 하고 중간에 중세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끼워넣으면 되는겁니다.
김 : 플라톤과 칸트 연결해주시고 아리스토텔레스하고 헤겔하고 연결해주시고, 다했습니다.
강 : 철학은 두개의 사조가 있습니다. 순수주의자 플라톤과 칸트, 잡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 중간에 토마스 아퀴나스를 끼워주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넣어줘야 합니다. 중세 철학자 하나는 넣어줘야 합니다.
김 : 다 했네요.
강 : 다 했습니다.
김 : 철학은 크게 두 부류가 있는데, 순수주의자 플라톤과 칸트, 잡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 넣어주고, 다른 사람은 체계를 세운 사람은 아니잖아.
강 : 아이 잔챙이라고 하죠.
김 : (웃다가 얼른 말을 받아) 최근에 50년은 애기잖아. 아직 렉시콘이 안 나온거 아냐?(하하하)
강 : 아, 많이 하셨네요. 이런 기본적인 모두스 비벤디를 가지고 접근해야겠지. 이렇게 정리하고, 열심히 해봐.
김 : 자크와 콩나물은 읽었나?
강 : 아 이거 마지막에 쐐기를 박을때. (폭소 연이어지고 있음) 동화책 중요해~ 삶의 모두스 비벤디를 다시 정리해야겠는데, 소공자도 읽게나 동화 중요해. (웃음)
김 : 렉시콘.
김 : 저희가 마지막으로 정리해볼까요. 플라톤과 칸트,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 잡다주의자들 토마스 아퀴나스 중간에 끼워주고, (키득거리며)렉시콘 외워주고, 모두스 비벤디. 철학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4. 조선시대 이야기도 있었어요.
5. 지적 사기 (소칼논쟁)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은 앨런 소칼 교수 (1955 ~ 현재)가 1996년 듀크 대학서 발행된 'Social Text'를 상대로 벌인 사기극이다. 일단 사건의 전말은 아래와 같다.
뉴욕대 물리학 교수였던 소칼은 철학이란 철학자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남발하는 공허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장난기가 동한 소칼은 아무 의미도 없는 가짜 〈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위하여
(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라는 가짜 논문을 'Social Text'지 에 제출했다.
소칼은 '그럴듯해 보이고 편집자의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에 동조하기만 하면 넌센스 범벅인논문을 출판해주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는데, 뜻밖에도 예상과 다르게 결국 이 논문은 1996년 'Social Text'의 봄/여름호에 게재 되었다.
그런데 이논문이 뜻밖에도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폴 그로스(Paul Gross)와 수학자 노먼 래빗(Normal Levitt)은 -고등미신(Higher Superstition)-이란 책을 통해 과학사회학자, 포스모던 과학자, 페미니스트, 급진적 환경론자들을 '학문적
좌익(Academic Left)'으로 규정하며 이들의 과학에 대한 무지와 적대적 태도를 공격했다.
-고등미신-으로 촉발된 이른바 '과학전쟁(Science wars)'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서 'Social Text'는 '과학전쟁'이라는 제호의 특집호를 만들어 반격에 나섰다. 이 특집호에서는 뉴욕대학의 물리학교수 앨런 소칼(Alan Sokal)이 기고한 -경계의 침범:양자중력의 변형해석학을 위하여- 라는 논문이 특히 큰 주목을 받았다. 자연과학자의 입장에서 문화적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고등미신-으로 촉발된 이른바 '과학전쟁(Science wars)'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서 'Social Text'는 '과학전쟁'이라는 제호의 특집호를 만들어 반격에 나섰다. 이 특집호에서는 뉴욕대학의 물리학교수 앨런 소칼(Alan Sokal)이 기고한 -경계의 침범:양자중력의 변형해석학을 위하여- 라는 논문이 특히 큰 주목을 받았다. 자연과학자의 입장에서 문화적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논문이 Social Text에 실린 날, 소칼은 'Lingua Franca'라는 학술지에다가 Social Text에 실린 자신의 논문은 엉터리 논문이라고 밝혔다. 이는 엄청난 병크여서 결국 이사건으로 Social Text를 출판하던 듀크대학교 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즉, 줄여서 말하자면 앨런 소칼이 'Social Text'지에다 논문이란 떡밥을 투여했는데 예상 외로 학술지가 낚여서 이 학술지는 심각한 웃음거리가 되었다는거.
소칼은 자신의 엉터리 논문에 대해 '전문용어, 참고문헌의 아전 인수격 해석, 장황한 인용, 명백한 넌센스들을 가장 멍청한 수학과 과학의 결과에 넣고 마구 뒤 섞은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이 끝난 뒤에, 소칼은 '지적 사기'라는 책을 출판해서 광대같은 지적 사기꾼들을. 한껏 비웃어 주게되는 동기가 된다.
사실 소칼이 이런 낚시질을 하게된 계기를 제공한 것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과학적 개념을 가져다가 이상하게 이용했고 소칼은 이들을 비웃어 주고자 이런 낚시질을 벌이게 된것. 하지만 소칼의 낚시질 때문에 엉뚱하게도 과학사회학 학자들과 과학자들간에 키배가 벌어졌다(...)
사실 소칼이 이런 낚시질을 하게된 계기를 제공한 것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과학적 개념을 가져다가 이상하게 이용했고 소칼은 이들을 비웃어 주고자 이런 낚시질을 벌이게 된것. 하지만 소칼의 낚시질 때문에 엉뚱하게도 과학사회학 학자들과 과학자들간에 키배가 벌어졌다(...)
사실 이 사건에서 Social Text는 여러번 소칼에게 너무 글이 난해하여 좀 쉬운글로 써달라고 부탁했으나
소칼은 거절했다고 한다. 또한 Social text는 과학자의 글또한 실어서 균형있는 관점을 만들고자 했다고는 하는데.. 결과가
이래서 원..
2000년 1월 국내에 이 책이 번역되고 여러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당시 최첨단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미친 꼬꼬마여서 그런 거 몰랐어요.)
읽어볼만한 글로 故양신규와 홍성욱의 논쟁이 있습니다. 난해하긴 합니다만 이런 글을 자꾸 읽다보면 진짜배기와 얼치기 논객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홍성욱의 서평: 상대주의 과학관을 변호함 - 『지적 사기』의 과학주의를 넘어
이어지는 논쟁
음.... 뭐 이리 주제와 관련 없는 얘기를 잔뜩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