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휴일엔 마초 기운 충전을

식은카푸치노 2011. 4. 24. 22:41

토요일 새벽부터 오후까지 12시간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밤이 되니 이상하게 졸렵더라고요. 거듭된 음주에 간이 휴식시간 쟁취 투쟁을 시작했나봐요. 1시도 되지 않았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감겨와서 기절하듯 누웠어요.
그랬더니만...
일요일 오전 9시에 일어나는 기록적인 사건이 발생했어요.

잘 되었다 싶어 아침부터 인터넷에 접속해 빈둥대다가 밥과 찌개를 제조한 뒤 룸메이트를 깨워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었어요. 그리고 저는 문화생활을 하러 시내로 향했지요. 오늘의 할 일은 영화 관람.

원주의 영화관 가운데 단 한 곳에서만 상영하는, 그것도 하루 1회만 상영하는 이 영화는, 두둥!  '마셰티' 랍니다.

우상을 섬긴 히브리인을 모세가 돌판으로 후려쳤다 한들 감히 이 비주얼에 비할까.
그깟 돌판 삽겹살이나 구워먹으라는 듯한 마셰티.


요즘 마초 기운이 부족한 듯해 이걸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가 각자 자신들의 영화에 가짜 예고편으로 삽입한 Fake Movie 가운데 하나가 마셰티였죠. 타란티노나 로드리게즈가 이걸 진짜로 만들 생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니 트레호의 끈질긴 요청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로드리게즈답죠. 팔다리가 썩둑썩둑 모가지가 뎅겅뎅겅하는 영화에요. 하지만, 그건 조연의 몫일뿐 총이나 칼을 맞으면 피를 솟구쳐서 나 맞았어 라고 알려주고 다시 냅다 뛰어댕기는 주인공을 보노라면 스필버그나 카메론은 리얼리티의 극을 추구하는 감독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좋아요. 로드리게즈의 프레임에 있는 데니 트레호를 보노라면 마초 기운이 솟아난다니까요. 켈로그는 광고 모델로 트레호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해요. 그깟 호랑이 기운으로 사내를 꼬시는 게 몇 살까지 통하던가요? 문지방 넘어갈 힘만 있어도 어쩐다고요? 마셰티는 문짝을 부수지요.

칠순잔치를 얼마 남기지 않은 트레호 옹의 늠름한 자태. 곱게 늙지 않은들 좋지 아니한가. 올드마초벋굳마초.
 
남의 곱창을 뽑아 쥐고 층간 이동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시는 트레호 옹


하지만, 몇 장면 만으로도 트레호 옹에 못지 않은 배우가 하나 있었으니 미셸 로드리게즈요. 


데이트하다가 심심해서 "애기야 우리 뭐 하고 놀까?" 하면 "러시안 룰렛" 할 것 같아요. 여주인공으로 제시카 알바가 나옵니다만, 미셸 로드리게즈 덕분에 그저 예쁘고 어리버리한 처자가 되어버렸어요. 왜 그리 마냥 착하게만 생겨먹었나요.


미셸 로드리게스 >> 넘사벽 >> 린제이 로한 > 제시카 알바


무엇보다 영화를 볼 때 좋았던 건 한적했다는 거에요. 저를 제외하면 세 커플이 입장했으니 7명이 관람했는데 다들 앤딩 크래딧이 뜨자마자 아무 말 없이 황급히 나가네요. 아마 시간이 어정쩡해서 골랐거나 포스터에 낚였던 모양이에요. 배우들은 어마어마하잖아요. 로버트 드니로, 스티븐 시걸, 기타 등등. 하하하~~

느긋하게 앤딩 크래딧을 보다가 밖으로 나와 커피샵으로 향하던 중 너무도 단정하게 차려입어 도좀 전파하겠구나 싶은 기운을 뿌리는 남성 한 분이 절 잡았어요.

"%$#^%$#^@#^%" (바람이 세게 불어 잘 안들림)
"네?"
"복이 많으십니다."  
"복 없어요." (으르렁)

나란 남자 사직서 제출하고 마셰티 기운 받은 마초인데 복은 무슨 복. 사람 봐가며 대사를 날려야지 그래가지고서야 신뢰가 없잖아.

책 조금 읽고 집에 들어와 룸메이트와 고기를 구워 막걸리를 한 잔 했더니 하루가 지나가려 합니다. 오랜만에 일요일을 영양가 있게 보냈어요. 여러분도 다들 즐거웠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 주에 어떻게든 결판을 내려면 예리한 정신을 유지해야 할테니 오늘도 일찌감치 잠들어야겠어요.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