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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중은 정부에 무엇을 바라는가.

by 식은카푸치노 2009. 9. 21.


이택광에 따르면 우리는 정치적인 것이 종언을 고한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보여진 이회창의 무기력한 모습은 민주당을 비롯한 반 한나라당 세력의 무기력함보다 의미가 큽니다. '진보-보수'의 대결구도가 무너지고 '정치-경제'라는 새로운 대결구도가 성립하는 걸 보면서 묘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경제 만능주의는 부르주아 정치에서 비롯했지만 오늘날 이 괴물은 대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강해져서 부르주아 정치마저 집어삼키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정치와 노동자 정치의 대립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무엇에 주목할 것인가부터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지점에 필요한 것이 자신을 포함한 대중의 욕구를 읽는 작업이겠지요.

한국 사회의 대중들이 부유한 계층을 혐오한다는 말은 그렇게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대중들은 부자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 부자가 되고 싶은데 될 수 없는 상황을 미워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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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문제를 시스템 탓으로 돌려버리는 이와 같은 생각은 하나마나한 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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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시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감정은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시기는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원초적 반발력으로서, 결국 그 가지고 싶은 대상을 파괴하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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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자본주의 사랑은 쾌락의 평등주의를 전제하는 거다.
- 무례한 복음 p.33 ~ p.35


이명박이 하야할 경우 차기 대통령으로 박근혜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도 이와 연관하리라 봅니다. 대중이 원하는 건 정치로부터 독립한 국가권력입니다. 오직 경제 활성화를 위한 권력이며 나도 부자로 만들어주는 국가권력을 원하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중의 구호 '이명박 OUT'에 내제된 의미는 민주적 관점에서의 '쟁취'가 아니라 소비적 관점에서의 '교환' 또는 '리콜'이겠지요.

이러한 욕구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중 하나가 다음 아고라에 등장했던 '미네르바'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네르바에게 '경제대통령'이라는 호칭이 붙여졌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이 무엇인지 미네르바 신드롬은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경제-대통령'이라는 조어구조가 지시하듯이, 이제 대통령이라는 권력은 정치와 분리된 그 무엇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은 놀고먹는 정치인과 부도덕한 기업인데 대항해서 국민의 이득을 실현해야 하는 '중성적 존재', 다시 말해서 정치와 분리된 경제의 중립성을 제현하고 있는 '권력'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네르바는 이명박이라는 현실의 대통령에 대한 '대리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명박 정부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투사해서 대중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바로 미네르바였던 셈이다.
- p.85 ~ p.86


주의해야 할 건 시장에서 국가로 권력을 이동하자는 게 대중의 요구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디까지나 '시장 정상화'를 위한 도구로서의 권력이지요. 자본주의를 정상적으로 돌리기 위한 권력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문제의 원인을 경제 구조에 두고 그에 대한 변혁에만 올인하는 진보세력은 대중의 신뢰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의 요구가 달라진만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기존의 방법론에 입각한 조직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더라는 걸 지난 촛불집회에서 확인했지요.

바디우의 말에 따르면 지금 맑스로 돌아간다는 말은 정치경제학적인 패러다임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혁명적 주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건 맑스주의 경제학의 수립이 곧 혁명적인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분석의 데이터를 '혁명적'으로 해석할 주체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담론은 인문학적 비판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학이 부족해서 이 꼴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61

파시즘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작동시켜달라는 욕망의 정치화이고, 그래서 부르주아계급과 좌파를 동시에 혐오하는 정서를 내포한다.
- p.69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겠느냐는 질문에 단순히 '인문학'이라고 답한다면 께름칙함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답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기에 희망도 가져볼만합니다. 중요한 건 담론이지요. 돈이 없어서 걱정하기보다는 돈이 없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 우리에게 긴급한 담론은 무척이나 도발적인 담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자로 공지했습니다만, 이번 책은 읽는 시간에 비해서 할 이야기들이 많아 매주 진행하려 합니다.  4부까지 모두 끝내기로 하고는 간신히 1부만 다루고 말았으니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입니다. 일단은... 번개 모임하듯 하면 되지 않을까요. 부담 없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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