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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프로이드가 시러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13.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읽었던 부모 교육용 지침서나 TV프로그램들. 그 대부분이 유아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게 프로이드에 기반을 둔거라지? 난 프로이드가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엄마가 된 이후엔 프로이드란 사람에게 짜증이 난다. 이건 뭐 5세 이전에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해주겠는데, 마치 절대적 애정을 쏟아주지 않으면 아이에게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겁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서 시키는 대로 다 해야만 한다면, 엄마노릇 겁나서 못하겠다 싶을 정도다.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도 공포스럽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발전이 있는거 아닌가? 근데 맨날 그놈의 정서적 안정. 정서적 안정.. 그럼 아이의 정서적 안정말고, 엄마의 정신적 안정은 어떻게 해야하는건데? 엄마도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야 아이에게 안정을 주던가 할꺼아냐? 어른이니까 스스로 알아서 해야하라 이건가? 아~ 쓸데없이 흥분해서 얘기가 샛길로 빠졌다. ^^;;

  내가  이런 이론들에 종종 흥분하는 것은, 아마도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일것이다. 그 이유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유아기를 보낸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같은 일에도 상처를 덜 받고 회복력도 훨씬 빠른 것같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때문이었다. 그 개인적인 느낌때문에 엄마가 된 이후로 프로이드를 짜증내하면서도, 완전 무시하지 못하고  한켠으로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좀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의 아픔의 깊이를 내가 어떻게 안다는 거지?'
'남의 상처가 회복됬는지 아닌지를 내가 어떻게 알수 있다는 거지?'
'상처와 회복정도 역시 양으로 측정할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내것과 남의 것을 어떻게 비교할수 있단거지?'

  남의 등에 박힌 칼보다 내 손톱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는 당연한 말을 또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내게 있어 상처란 내가 느끼는 시점부터 내가 느끼는 정도이고, 내가 느낄수 있는 타인의 상처란 내가 알게 되는 시점부터 상대가 표현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을테니까. 상처의 회복 역시, 나의 회복은 우연히 떠올라도 더이상 가슴 아프지 않고 추억으로 받아들일수 있을 정도가 된 시점인 반면, 타인의 회복은 어쩌면 '이젠 괜챦다'고 입밖으로 꺼내어 말할수 있는 시점을 회복이라 여겼던건 아닐까.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아주 가끔쯤은 남의 상처를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만큼은 아파해줄줄 아는 사람이길 바랬건만, 지금 생각해보니 택도 없다. 아직도 내 상처 핧아대기에만 바빠서 남의 상처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살았던게 아닌가 싶다. 내 상처와 비교하느라 남의 상처를 궁금해 하고, 때론 공감하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공감의 노력이었다면, 여태 양이나 속도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진 않았겠지. 지난 시간들을  미숙함이라 핑계대고 싶다. 

  어쨌든 얼마전까지 찜찜하던 생각에서 한발짝 물러서고, 나 자신에게서도 한발짝 더 뒤로 물러서고... 지금은 책임감혹은 모성애등으로 뭉뚱그려져있긴 하지만, 실은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내 아이들에 대한 내 감정들에서도 한발짝 더 뒤로 물러서고... 그렇게 조금씩 더 물러서고...

   "무겁고 진지한 사고만이 사태의 깊이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믿는 자들은 무게와 깊이를 혼동하고 있다."
 이 문구를 읽는 순간, 꼭 나를 지칭하는 글 같아서 찔렸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강박이 가져오는 진지한 태도. 그런 태도가 가져오는 많은 생각들. 그러다보면 어느새 생각들이 무거워지고, 생각에 무게가 실리면 어느 정도 깊이까지는 도달할수는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 무게감때문에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가벼워지지도 못한채 늘 거기서만 머문다. 무게만 남고 깊이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는 걸 알고 있기에, 종종 이 글을 읽으면서 '진지하되 가볍게'라고 마음속에 쉼표를 찍곤한다. 
 한발짝 뒤로 물러설때마다, 좀더 가벼워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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