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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웃음의 코드

by 식은카푸치노 2009. 11. 2.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읽다가 웃음과 관련한 대목에 눈이 머물렀습니다.

벌써 몇 해 전의 일이지만 디에프 근해에 여객선이 난파당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몇몇의 여행객이 소형 구명보트에 올라 천신만고 끝에 구조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구조에 용감하게 나섰던 세관원은 다음과 같은 첫 마디로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혹시 뭐 신고하실 것이 없습니까?"

세관원의 말은 우리를 웃게 합니다. 그것은 그의 이야기나 행동이 유동적 상황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는 단지 과거에 습득한 행동을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베르그송의 지적처럼 이렇게 웃음은 상투적으로 반복되는 행동, 혹은 일상에 대한 조롱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 p.261


최근에 아래 이미지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어요. 이미지의 제목이 '농창용'이었거든요.



사과를 던지는 시위 사진과 임창용 선수의 투구 사진을 대비시킨 이미지입니다. 이 이미지를 보고 피식 웃을 수 있었던 건 좌우측 이미지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 좌측 사진이 적당히 심각하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만일 용산참사 사진이라도 대비시켰다면 난리가 났겠죠.
하지만, 이 이미지를 보고 웃고는 한켠에 죄책감이 피어오르기도 했어요. '웃어도 될까?'라는 질문에서 비롯한 죄책감, 일종의 도덕심이겠죠. 솔직히 말하면 용산참사 사진이었더라도 순간적으로는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뇌는 기계적으로 반응하죠.

유머는 거리두기에서 시작합니다. 거리두기를 할 때 조롱을 할 수 있죠. 그나마 어느 정도 인간애가 숨어있다면 유머라 하지만 그마저 벗어나면 위트라 하지요. 따라서 위 사진은 위트라고는 할 수 있어도 유머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유머는 좋고 위트는 나쁜가?"라면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각자 판단해야겠지요. 전 아직도 제 웃음을 학습해야 할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냥 웃기면 웃습니다. 웃음은 웃음입니다. 그뿐이지요. 하지만, 웃고 나서 웃음에 대해 반성하기도 하고 폭력적인 위트에 대해 제가 웃었다고 상대에게 면죄부를 부여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복합적이고 순차적인 태도가 그저 칸트의 진선미(p.269)로 충분히 설명될까나요. 모르겠네요.


별 고민 없는 인간도 있습니다만.




ps. 아무런 죄책감 없이 웃을 수 있는 이미지도 소개하지요. 제목은 '삼성은 다 내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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